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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가볼만한곳

가을여행 가볼만 한 곳 - 여행 추천지 '책따라 여행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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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여행 가볼만 한 곳 - 여행 추천지 

길 위에서 가을을 읽다. '책따라 여행따라' 소슬바람 불기 시작하는 유난히도 매력적인 가을의 문턱이다. 독서하기에도 좋은 초가을, 지친 일상을 털어내고 청아한 가을 길을 따라 문학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낡은 서점 깊숙이 먼지로 흠뻑 둘러쓴 책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만나는 주인공들의 삶, 문학 속 풍경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휴식 이상의 값진 경험과 감흥을 얻기에는 충분다.

 







주산지
주산지 (경상북도 청송군 )

청송군 부동면 소재지인 이전리에서 약 3km 지점에 있는 이 저수지는 약 270년 전에 준공된 것이다. 길이 100m, 넓이 50m, 수심은 7.8m로 그다지 큰 저수지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물이 말라 바닥이 드러난 적이 없다 한다. 특히 저수지 속에 자생하는 약 150년생 능수버들과 왕버들 20여수는 울창한 수림과 함께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며, 이 곳에서부터 계곡을 따라 별바위까지 이르는 등산로도 매우 운치있는 경관을 자랑한다. 특히 김기덕 감독의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 이라는 영화가 촬영되어 현실세계가 아닌 듯한 아름다운 '주산지'로서 각광받고 있다. 이 영화 덕분에 이제는 여기저기서 많은 여행객들이 찾아올 만큼 유명한 여행지가 되었다. 찾아가는 길이 쉽지는 않은데 서울에서 약 5시간 거리로, 고속도로, 국도, 지방도로를 모두 거치고 마지막으로 구불구불한 비포장산길까지 올라서야 그 모습을 마주할 수 있다.

 
이효석생가터
소설 '메밀꽃 필무렵' 배경지 (강원도 평창군 )

우리나라 단편문학의 백미로 일컬어지는 '메밀꽃 필 무렵'의 작품무대이며, 가산 이효석선생이 태어나 자라난 곳이다. 지난 1990년도에 문화관광부로 부터 [전국 제1호 문화마을]로 지정되었으며 이곳 효석문화마을을 배경으로 해마다 '메밀꽃 필 무렵' 효석 문화제로 칭하는 축제가 늦여름 8월말 9월초 열린다.

* 이효석 문화마을 >>이효석 문화마을 안에는 이효석생가터 , 물레방앗간, 충주집, 가산공원, 이효석기념관, 메밀 향토자료관 등이 있다.

* 이효석생가터 >> 강원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집으로 생가의 원래 모습은 초가집이었다고 하며, 지금은 큰 엄나무 두 그루가 마당을 차지하고 있는 기역자 모양으로 지어진 함석집이다.

 
낙안읍성
소설 '무진기행' 배경지 (전라남도 순천시 )

김승옥 단편소설 '무진기행(霧津紀行)' 배경지 순천시 교량동과 대대동, 해룡면의 중흥리, 해창리 선학리 등에 걸쳐 있는 순천만 갈대밭의 총 면적은 약 15만평에 달한다. 순천 시내를 관통하는 동천과 순천시 상사면에서 흘러 온 이사천의 합수지점부터 하구에 이르는 3㎞쯤의 물길양쪽이 죄다 갈대밭으로 뒤덮여 있다. 그것도 드문드문 떨어져 있거나 성기게 군락을 이룬 여느 갈대밭과는 달리, 사람의 키보다 훨씬 더 웃자란 갈대들이 빈틈없이 밀생(密生)한 갈대밭이다. 갈대 군락지로는 국내 최대 규모라고 하는데, 갈대의 북슬북슬한 씨앗 뭉치가 햇살의 기운에 따라 은빛 잿빛 금빛 등으로 채색되는 모습이 아주 장관이다. 게다가 때마침 불어온 갯바람에 갈대숲 전체가 일제히 흐느적거리는 풍경은 망망한 바다에 일렁이는 물결처럼 장엄하고 아름답다.

* 순천만 갈대군락지 >>
* 낙안읍성 >>
삼한시대 마한땅, 백제때 파지성, 고려때 낙안군 고을터며, 조선시대 성과 동헌, 객사, 임경업장군비, 장터, 초가가 원형대로 보존되어, 성과 마을이 함께 국내 최초로 사적 제302호에 지정되었다. 동무을 비롯 서, 남문을 통해 성안에 들어서면 사극 촬영장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져 들며(사극 용의 눈물, 태조왕건 등 촬영장소) 용인, 제주민속마을과 같은 전시용이나 안동 하회마을과 같이 양반마을도 아닌, 그저 대다수의 우리 서민들이 살아왔던 옛 그대로의 모습이기에 조상들의 체취가 물씬 풍겨 친근한 정감이 넘친다.

* 소쇄원 >> 
소쇄원은 양산보가 은사인 정암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능주로 유배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자 출세의 뜻을 버리고 자연속에서 숨어 살기 위하여 꾸민 별서정원(別墅庭園)이다. 주거와의 관계에서 볼때에는 하나의 후원이며, 공간구성과 기능면에서 볼 때에는 입구에 전개된 전원과 계류를 중심으로하는 계원(溪園) 그리고 내당(內堂)인 제월당을 중심으로 하는 내원(內園)으로 되어 있다.
 
안동민속촌
소설 '객주' 배경지 (경상북도 청송군 )
김주영 소설 '객주' 배경지
 
* 주산지 >> 
청송군 부동면 소재지인 이전리에서 약 3km지점에 있는 이 저수지는 약 270년 전에 준공된 것이다. 길이 100m, 넓이 50m, 수심은 7.8m로 그다지 큰 저수지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물이 말라 바닥이 드러난 적이 없다 한다.
 
* 도산서원 >>
도산서원은 조선 중기 성리학의 대학자이신 퇴계 이황선생이 명종16년(1561)에 도산서당과 농운정사를 직접지어 이곳에서 인격을 수양하고 학문을 연구하며, 강론을 통해 나라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위해 아주 바르고 참되고, 양심있는 인재를 많이 길러낸 사학(私學)의 원천으로, 요즘 같으면 사립학교와 같은 교육의 전당이다. 도산서당이 서원건물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을 보아도 선생의 소박함을 알 수 있다.
 
* 안동민속촌 >> 
안동 시내 동쪽의 안동댐 주변에는 안동 민속촌과 안동 민속박물관, 이육사시비, 드라마 태조 왕건 촬영장, 안동호 등이 몰려 있어, 제대로 돌아 보자면 한나절은 족히 걸린다. 안동댐 보조댐 부근에서 강 건너편을 바라보면 언덕배기에 초가집이 드문드문 들어 앉아 있다. 이 곳이 바로 안동댐을 조성하면서 수몰된 지역의 가옥 몇 채를 옮겨와 야외박물관으로 만든 민속 경관지이다. 야외박물관입구에는 두 개의 장승이 반기고 있고 이어서 이고장이 낳은 문인 이육사 선생의 시비앞으로 발걸음이 옮겨진다. 시비에는 그의 대표작 '광야'가 새겨져 있다.
 
소설 '등신불' 배경지
소설 '등신불' 배경지 (경상남도 사천시 )
# 작가 김동리
김동리 선생은 혼미한 격변기에 우리 순수문학을 굳건히 지켜왔고, 인생의 구경을 탐구하는 문학정신을 주창하여 해방 후 새로운 휴머니즘문학의 근강을 이루어 1982년 노벨문학상 5위 이내에 선정된 세계적인 작가이다. 김동리는 어머니가 42세 때 얻은 막내였다. 김동리에게 책은 제도교육을 몇 단계 뛰어 넘는, 그의 정신 연령을 충족시켜 주는 진정한 스승이었다. 맏형이신 한학자 범부선생의 서가에 꽂힌 책들을 읽으며, 지식욕을 채워가던 그는 스스로 학업을 놓았다. 아버지가 남기신 유산으로 의학공부를 하라는 중형의 권유를 거절함으로써 그의 진로는 온전히 책들의 바다로 향하게 되었다.
 
20대 초반의 어느 날, 김동리는 다솔사에서 불경과 동양철학을 가르치던 범부로부터 만해가 왔으니, 절로 오라는 기별을 받았다. 그 당시 다솔사는 주지 최범술 스님을 중심으로 항일을 모의하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동리는 만해, 김법린, 최범술 등에게 소개되었고, 이들의 영향권에서 민족의식을 다지는 한편, 불경을 깊이 공부했다. 일제가 다솔사 부설 광명학원을 폐쇄해버리자, 그곳에서 한글을 가르치던 동리는 소설 습작에 전념했다. 그 결실의 하나인 <화랑의 후예>가 '조선중앙일보'에 당선되었고, 이듬해 <산화>가 '동아일보'에 당선되었다. 작가의 길로 들어선 동리는 작품을 통해 민족의식, 한국의 얼을 형상화하는 데 주력했다. 이 무렵 친일단체인 문인보국회와 국민문화연맹으로부터 가입통지서가 날아왔으나 불살라버렸고, 소설 <소녀>와 <하현>이 일제의 검열에 걸려 전면 삭제되자 해방 때까지 절필하고 침묵했다.

# 등신불과 다솔사
일제 강점기에 사천 다솔사는 만해 한용운을 비롯해 독립운동가 정치, 교육 활동에 활발했던 김법린과 최범술, 불교철학을 연구 교육하는 데 힘쓴 김범부, 소설가 김동리 등이 은거하면서 독립운동을 한 곳으로 유명하다. 소설가 김동리는 1936년부터 1940년까지 다솔사에 머물며 광명학원이란 야학을 세워 농촌계몽 운동을 펼쳤다. 사천의 다솔사 지역은 김동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학적 동기 제공해 준 장소로, 다솔사에서 얻은 체험으로 쓴 작품들이 많다. 대표작으로 <황토기>와 <등신불>이 있다. 다솔사에 얽힌 전설을 기초로 하여 쓰여진 작품이 <황토기>이고, 다솔사에 있었던 ‘소신대(燒身臺)’를 바탕으로 쓰여진 작품이 <등신불>이다. 당시 한용운 스님이 다솔사에 내려왔을 때 김범부, 최범술이 분신 공양을 한 승려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을 듣고 충격을 받은 김동리는 마음 깊이 담아두었다가 훗날 소설로 발표했다. 그 작품이 <등신불>이다.
 
* 등신불 줄거리
‘나’는 일제 말기 학병으로 끌려가 남경에 주둔해 있다가, 대학 선배인 진기수의 도움으로 탈출, 정원사란 절에 몸을 의탁한다. 그곳에서 금불각의 화려한 외양에 반감을 가지게 된다. 그러던 중 금불각에 안치된 등신불을 보게 되는데, 그 불상 같지도 않은, 인간적인 비원을 담고 있는 모습에서 충격과 전율을 느끼게 된다. 그 불상은 옛날 소신공양(燒身供養)으로 성불한 ‘만적’이라는 스님의 타다 굳어진 몸에 금을 씌운 것이다. ‘나’는 원혜대사를 통하여 신비로운 성불의 역사를 듣게 된다. 이야기를 들은 ‘나’는 그 불상에 인간적인 고뇌의 슬픔이 서려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이야기를 마친 원혜대사는 ‘나’에게, 남경에서 진기수씨에게 혈서를 바치느라 입으로 살을 물어뜯었던 오른손 식지를 들어 보라고 한다. 왜 그 손가락을 들어 보라고 했는지, 이 손가락과 ‘만적’의 소신 공양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원혜대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데 정오를 알리는 북소리와 목어 소리만 들려온다.
 
* 다솔사 >> 
다솔사는 오랜 역사를 지닌 고찰로서 대한불교 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범어사의 말사이다. 신라시대 511년(지증왕12년)에 연기조사가 영악사(靈嶽寺)라 하여 창건하였다. 636년(선덕여왕 5년) 새로 건물 2동을 지은 뒤 다솔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676년(문무왕 16년) 의상대사에 의해 영봉사((靈鳳寺)로 바뀐 뒤 신라 말기에 도선 국사가 다시 손질하여 고쳐 짓고 다솔사라 하였다. 1326년(충숙왕 13년) 나옹이 중수한 뒤에도 여러 차례 수리하였으며, 임진왜란 당시 전화로 불탔으나 숙종 때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현재의 건물은 1914년의 화재로 타버린 것을 이듬해 다시 세운 것이다. 그 뒤 낡은 건물을 1930년 만해 한용운 선생이 보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다솔사는 현존 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 된 요사채로 1974년 2월 16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83호로 지정된 대양루, 대웅전, 나한전, 천왕전, 요사채를 비롯한 10여 동의 건물이 있다. 대양루는 1749년(영조 25)에 세워져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는 2층 맞배집으로 건평이 106평에 이르는 규모가 큰 건축물이다. 또한 대웅전 후불탱화 속에서 108개의 사리가 발견되어 세상의 이목을 끌었다. 108개의 사리가 탑 속에 보존되어 불자들의 순례지자 기도도량으로 가장 신성한 장소로 신봉되었다. 한편 이 절은 일제 때 한용운이 머물러 수도하던 곳이며, 소설가 김동리가 한동안 머물러 <등신불(等身佛)>을 쓴 곳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절 주위에서 재배되는 죽로차(竹露茶)는 반야로(般若露)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명차이다.
 
최참판댁(소설 토지의 무대)
최참판댁(소설 토지의 무대) (경상남도 하동군 )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로 유명한 악양 평사리는 섬진강이 주는 혜택을 한 몸에 받은 땅이다. 평사리가 위치한 지명인 악양은 중국의 악양과 닮았다하여 지어진 이름이여 중국에 있는 지명을 따와서 평사리 강변 모래밭을 금당이라 하고 모래밭 안에 있는 호수를 동정호라 했다. 악양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 중에 소상팔경이 있으며 평사리에 위치한 동정호와 악양의 소상팔경은 이곳 사람들의 자랑거리로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가득 담긴 풍경을 자아낸다.

또한 형제봉 중턱 300m에 위치한 사적 제151호 고소성은 신라시대 축성한 것으로 섬진강과 동정호를 발 아래 두고 천년의 발자취를 말해준다. 동학혁명에서 근대사까지 우리 한민족의 대서사시인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인 이곳 평사리에 소설속의 최참판댁이 한옥 14동으로 구현되었으며, 조선후기 우리 민족의 생활모습을 담은 초가집, 유물 등 드라마 '토지' 세트장도 조성되어 있다. 매년 가을이면 전국 문인들의 문학축제인 토지문학제가 이곳에서 개최되어 문학마을로써 자리매김될 전망이며 또한 소설 속의 두 주인공을 캐릭터로 개발하여 관광상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소설 '남한산성' 배경지
소설 '남한산성' 배경지 (경기도 광주시 )
소설 '남한산성' 배경지 서울을 지키는 외곽에 4대 요새가 있었다. 북쪽의 개성, 남쪽의 수원, 서쪽의 강화, 동쪽의 광주였다. 동쪽의 광주에는 남한산성이 있었다.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24km, 성남시에서 북동쪽으로 6km 떨어져 있는 남한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길이는 9.05km, 높이는 7.3m 이다. 원래 2천여년 전,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 백제의 시조 온조왕때 쌓은 토성이었으나, 이를 신라 문무왕때 다시 쌓아 '주장성'을 만들고, 그 옛터를 활용하여 후대에도 여러번 고쳐 쌓다가, 조선조 광해군때(1621) 본격적으로 축성하였다 한다.
 
소설 '상록수' 배경지
소설 '상록수' 배경지 (충청남도 당진군 )
# 작품 소개
1935년 <동아일보>의 농촌 계몽을 주제로 한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된 작품이다. 러시아의 '브 나로드(V narod) 운동'에 영향받아 전개된 농촌 계몽 운동과 이광수의 <흙>에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농촌 계몽에 투신하는 젊은 남녀 박동혁과 채영신의 헌신적 노력과 역경 극복, 그리고 고귀한 사랑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브 나로드(V narod) 운동'의 시범 작품으로 쓰여진 이광수의 <흙>(1932)이 농촌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감상적 성향이었다면 이 작품은 농촌 계몽 운동에 근접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즉, 행동형의 주인공이 지식이나 관념보다 현실을 이해하고 농민 자신의 삶과 합치되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이 작품은 1930년대 농촌 계몽 운동과 농민 문학의 통합된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 줄거리
영신과 동혁은 ○○신문사 주최의 농촌 계몽 운동에 참여했던 열성적인 학생들로서, 주최측이 베푼 위로회 석상에서 보고(報告)연설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둘은 학업을 끝내고 동혁은 한곡리로, 영신은 청석골로 내려가 농촌 계몽 운동에 헌신한다.

동혁은 30세 이하의 청년들을 모아 농우회를 조직하고 회관 건립과 마을 개량 사업을 추진한다. 그러나 지주(地主)인 강 도사의 아들 강기천과 당국의 방해로 어려움을 겪는다. 채영신도 예배당을 빌려서 가난한 농촌 아이들에게 한글 강습을 실시하는 한편, 기부금을 모아 새 건물을 지을 계획을 하지만 일제의 방해로 130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80명으로 제한하라는 통고를 받고 괴로워한다. 갖은 어려움 끝에 영신은 모금된 100여 원으로 청석 학원을 지으려 목도(木刀)질까지 스스로 하다가 과로와 맹장염으로 학원 낙성식날 졸도하여 입원하게 된다.

동혁이 영신에게 문병을 와 있는 동안 강기천은 농우회원들을 매수하여 명칭을 진흥회로 바꾸고 회장이 된다. 이에 분노한 동혁의 동생이 회관에 불을 지르고 도망하자 동혁이 대신 수감된다. 출옥한 동혁이 청석골로 갔을 때 영신은 이미 죽어 있었다. 동혁은 영신을 장례지내고 산을 내려오면서 상록수들을 보며 농촌을 위해 평생 몸바칠 것을 다짐한다.

# 작가 심훈(沈熏, 1901-1936)
농촌계몽소설 <상록수>를 민족의식과 계급적 저항의식을 가진 소설가이자 시인, 영화인 심훈. 본명 대섭(大燮)이며 서울 출신이다. 1919년 제일고보 재학중 3.1운동에 참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복역, 그 후 중국으로 건너가 방랑, 한때 항주 지강대학을 다녔다. 1923년 귀국, 안석주, 최승일 등과 신극 연구단체인 극문회(劇文會)를 조직, 1926년 동아일보에 영화 소설 <탈춤>을 연재하였다. 이것을 계기로 영화계에 진출, 1927년 영화 <먼동이 틀 때>을 원작, 각색, 감독하였다.

1930년 이후 <동방의 애인><영원의 미소><직녀성> 등의 장편 소설과 시 <그날이 오면>을 발표하였다. 1935년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현상 소설에 장편 <상록수>가 당선되자 그 상금으로 당진에 상록학원을 설립하였다. 1936년 손기정이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하였다는 신문 호외에 감격하여 그 뒷면에 <오오 조선의 남아여!>라는 즉흥시를 쓴 것을 마지막으로 급서하였다.

그의 작품은 대중적이며 계몽적인 것이고, 특히 대표작<상록수>는 당시 브나로드라는 민족주의 운동을 반영한 것이다.〈상록수〉에서는 젊은이들의 희생적인 농촌사업을 통하여 강한 휴머니즘과 저항의식을 고취시킨다. 행동적이고 저항적인 지성인이었던 그의 작품들에는 민족주의와 계급적 저항의식 및 휴머니즘이 기본정신으로 관류하고 있다. 특히, 농민계몽문학에서 이후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본격적인 농민문학의 장을 여는 데 크게 공헌한 작가로서 의의를 지닌다. 주요 작품으로는, <탈춤>, <동방의 애인>, <영원의 미소>, <상록수>(1935년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현상 공모 당선작), <직녀성> 등이 있다.

# 소설 상록수 배경지

충청남도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는 당진군은 소설 '상록수'의 작가 심훈의 고향이자, 소설 '상록수'의 무대로 알려졌다. '상록수' 속에 담겨있는 사회개량, 의식개혁 등의 바람직한 농군의 이미지를 계승하고 승화시키자는 취지로 1977년부터 매년 10월 초순에 상록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대표적인 행사로는 모든 군민이 참여하는 축등행렬을 들 수 있으며, 농산물 전시회를 가지는 등 뜻있는 향토문화축제가 되고 있다.

* 한진포구
소설 <상록수>에서 한진포구는 여주인공 채영신이 포구를 통해 한곡리를 찾아와 박동혁을 만나는 배경이 된다. 특히 포구 근처에 있는 갯바위들은 박동혁과 채영신이 사랑을 약속했던 곳으로 이제는 청춘남녀들이 즐겨찾는 명소가 되었다.

* 필경사 >>
필경사는 일제강점기 심훈 선생이 문학창작활동을 위하여 1932년에 한곡리(지금의 한진과 부곡리를 합친 말)로 내려와 이듬해인 1933년에 '영원한 미소'를 썼고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장편소설 '직녀성'이 연재되면서 그 고료로 받은 돈으로 그가 직접 설계하여 지은 문학 산실이다.

필경사는 '붓으로 밭을 일군다'는 뜻으로 '필경사'란 문학잡지에서 따왔다고 전해지고, "-"자형 초가지붕 아래 목조기둥으로 세워져 있으며 벽체는 황토를 짓이겨 발랐다. 옛날 시골 농촌의 전형적인 초가이다. 선생은 이곳에서 1935년에 장편소설 '상록수'를 52일만에 탈고하였으며 이 소설은 동아일보 창설 15주년 문예작품현상모집에 당선되었다.

지금은 당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오는 이를 말없이 맞이할 뿐이다. 책상 위에는 그가 읽었던 책들이 흩어져 있고 등불과 옷가지, 부엌의 아궁이 화장실까지 당시의 모습을 재연할 뿐이다. 집 주변에는 그가 직접 심었다는 대나무들이 오랜 세월이 흘렀음을 말하듯 울창한 숲으로 둘러 싸였고 앞에는 양면으로 상록수가 몇 그루 우두커니 서있을 뿐이다. 이 필경사는 한때 교회로도 사용되었는데 심훈의 둘째 형 심명섭 목사가 6.25때 강제 납북되면서 그의 부인 권유희가 이곳으로 내려와 1951~1970년 까지 피난민을 중심으로 예배를 가졌었다. 그 이후 심훈의 장조카 심재영 씨가 이 필경사를 사들여 관리해 오다가 당진군청에 기념물로 기증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한편 당시 예배모임은 지금의 상록수 교회로 발전하게 되었다.

* 상록탑
당진에는 필경사 외에도 심훈과 관련된 곳이 있는데 읍내리 남산에 있는 상록탑이 그것이다. 이 탑은 1976년에 <상록수>의 늘 푸른 정신을 본받자는 취지 아래 건립되었는데 새마을운동과 맥을 같이하는 농촌계몽운동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여겨진다. 1977년부터 시작된 당진의 대표적인 문화예술축제인 상록문화제가 바로 이 상록탑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심훈 선생이 평소부터 깊은 관심을 기울여왔던 농촌 계몽운동을 피력한 소설 '상록수'는 이후 한국 농촌 계몽 소설의 선구적 작품이 되었다. 이러한 선생의 상록수 정신을 후세에 전달하고자 건립된 상록탑은 남산공원에 있다.
 
소설 '선택' 배경지
소설 '선택' 배경지 (경상북도 영양군 )
 
 # 소설가 이문열
소설가 이문열은 1948년 경북 영양군 석보면 원리리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중퇴하고 1977년 단편<나자레를 아십니까>가 대구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가작으로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1979년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새하곡(塞下曲)>이 당선되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젊은날의 초상>, <황제를 위하여>, <레테의 연가>, <사람의 아들>, <금시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삼국지>, <수호지> 등이 있으며, 오늘의 작가상, 동인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이상문학상, 호암상(예술상) 등을 수상하였다. 같은 해 중편 '사람의 아들'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으면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전개하여 80년대에 가장 많은 독자를 확보한 작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의 소설의 특징은 탄탄한 구성과 문장의 탁월함으로, 자전적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 있다.
 
# 소설 <선택> 배경지
소설 <선택>은 이문열이 1997년 발표한 작품으로 저자의 13대조 할머니인 정부인 안동장씨의 일대기를 소재로 하여, 가정을 선택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 두들마을 >> 
두들마을은 조선시대 때 광제원이 있었던 곳으로 2000년 10월 전통문화마을로 지정, 민속자료 91호인 석계고택을 비롯해 많은 문화재 등이 있는 유서깊은 고장이다. 석계 이시명 선생과 그의 후손 재령이씨들의 집성촌, 석계고택, 석천서당 등 전통가옥 30여채와 동대, 서대, 낙기대, 세심대라 새겨진 기암괴석을 비롯, 궁중요리서(음식디미방)를 쓴 정부인 안동장씨 유적비, 광산문학연구소 등이 있다. 또한 두들마을은 한국문학의 거장 이문열 작가의 고향으로 이문열의 소설 ,<선택>의 직접적인 배경이 되면서 유명해지기도 했다. 그의 저서 <그해 겨울>,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금시조>, <황제를 위하여>, <영웅시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 많은 작품 속에 인물들의 삶의 역정이 펼쳐지는 무대가 바로 이곳이기도 하다. 석계고택, 석천서당 등이 생가 주변에 에워싸고 있어 이문열이 왜 문학에 심취하고 또 많은 대작들을 쓸 수 있었는지 이해할만하다. 현재 여산 문학연구소, 향토유물관을 건립하는 등 문화마을 조성하고 있다.
 
* 광산문학연구소
작가 이문열이 문학에 대한 연구와 문학도를 양성하기 위해 만든 광산문학연구소. 이곳에서 이문열의 소설 ´선택´이 만들어 졌다. 광산문학연구소는 이문열이 문학에 대한 연구와 문학도를 양성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지난 2001년 5월에 문을 열었다. 한국현대문학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문학도를 양성하기 위하여 소설가 이문열씨의 고향인 영양군 석보면 원리리 두들마을에 광산문학연구소를 건립하였다.
위치 : 경북 영양군 석보면 원리리(두들마을)324-3
규모 : 학사 6실, 강당 및 사랑채 각 1실, 관리사(서재, 대청, 식당)5실
부대시설 : 정자, 주차장 등
 
* 석계고택(石溪古宅)
석계고택은 조선 인조와 현종 때의 학자인 석계 이시명(李時明, 1599~1674)이 인조 18년(1640)에 세운 고택이다. 선생은 퇴계 이황의 학통을 이은 장흥효의 문인으로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으나 이곳에 은거하여 학문에 전념하였다. 선생의 부인인 정부인 장씨는 부덕과 학문을 갖춘 인물로 신사임당에 비견되는 분으로 이문열 장편소설 <선택>의 주인공이 되었고, 아들인 이조판서 갈암 이현일은 퇴계 이황의 영남학파를 계승하였다. 이 집은‘一'자형 사랑채와 안채를 ‘二'자형으로 배치하고 토담으로 막아 허실감(虛失感)을 메운 뜰집과 같은 느낌이 들도록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91호
소재지 :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 원리리 318
 
* 석천서당(石川書堂)
석천서당은 석계 이시명(李時明, 1599~1674) 선생이 영해에서 석보로 이사와 세운 석계초당을 후손들과 유림이 중건하여 석천서당이 되었다. 선생은 퇴계의 학통을 이은 장흥효의 문인이며, 영남학파를 이은 이조판서 갈암 이현일의 부친이다. 이 서당은 두들산을 배산(背山)으로 하고 남서향으로 향하고 있는데 평면은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되어 있다. 좌측에서 첫째와 넷째칸은 통칸방으로 꾸몄고 둘째와 셋째칸은 마루를 깔았다. 정면과 좌우면에 2자의 쪽마루를 내어 평난간을 둘렀고, 마루로 향하게 한 창호는 4분합의 들어 열개문으로 하여 6칸을 1칸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였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79호
소재지 :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 원리리 318
 
송광사
소설 '태백산맥' 배경지 (전라남도 보성군 )
* 보성 벌교 탐방길 >>
보성 벌교는 이러한 아픔의 역사를 잘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벌교읍 일대는 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다. 벌교읍 곳곳에 소설 속의 주 무대로 등장했던 여러장소들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
 
* 용추폭포계곡 >> 
제암산은 골짜기마다 샘물과 개울이 많은 산이다. 특히 철쭉이 유명한 제암산은 5월이면 봉우리마다 붉은 철쭉꽃이 장관을 이룬다. 산 정상에서면 무등산과 월출산, 다도해가 내려다 보인다. 제암산 기슭에 용추골이 있고, 이 용추골에서 2km쯤 오르면 골치 1.4km절터 1.9km일림산 2.6km이정표가 보이고 곧바로 계곡을 가로지르는 목교인 용추교를 건너면 보성강의 발원지인 용추폭포가 나온다.
 
* 조계산도립공원 >> 자세히 보기
선암사와 송광사라는 두 사찰을 끼고 있는 조계산(884.3m)은 전남 순천시 승주읍과 송광면에 위치하고 있다. 조계산은 비교적 낮은 산으로 산세가 부드럽고 아늑하다. 선암사 둘레에는 월출봉, 장군봉, 깃대봉, 일월석 등이 줄지어 솟아있다.
 
* 선암사 >>
 
* 송광사 >> 
 
* 낙안읍성민속마을 >> 
삼한시대 마한땅, 백제때 파지성, 고려때 낙안군 고을터며, 조선시대 성과 동헌, 객사, 임경업장군비, 장터, 초가가 원형대로 보존되어, 성과 마을이 함께 국내 최초로 사적 제302호에 지정되었다. 다른 지역 성과는 달리 넓은 평야 지대에 1~2m크기의 정방형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높이 4m, 너비 3~4m, 성곽 총길이가 1410m로 동내, 남내, 서내 등 4만 1천평에 달하는 3개 마을 생활근거지를 감싸 안은듯 장방형으로 견고하게 축조되어, 400년이 가까운 지금도 끊긴데가 없고 웅장하기 이를데 없다.
 
운주사
소설 '장길산' 배경지 (전라남도 화순군 )
소설 '장길산' 배경지 천불산 다탑봉 운주사는 천불천탑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 불교의 깊은 혼이 서린 운주사는 우리나라의 여느 사찰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불사를 한 불가사의한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운주사 불상들은 천불산 각 골짜기에 비로자나부처님(부처님의 빛, 광명)을 주불로 하여 여러기가 집단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크기도 각각 다르고 얼굴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홀쭉한 얼굴형에 선만으로 단순하게 처리된 눈과 입, 기다란 코, 단순한 법의 자락이 인상적이다. 민간에서는 할아버지부처, 할머니부처, 남편부처, 아내부처, 아들부처, 딸부처, 아기부처라고 불러오기도 했는데 마치 우리 이웃들의 얼굴을 표현한 듯 소박하고 친근하다. 이러한 불상배치와 불상제작 기법은 다른 곳에서는 그 유형을 찾아볼 수 없는 운주사 불상만이 갖는 특별한 가치로 평가받는다.
* 운주사
 
촉석루
소설 '논개' 배경지 (경상남도 진주시 )
 * 의가사와 의암
이곳은 제2차 진주성 싸움 뒤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 논개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사적 제 118호인 진주성비에 있으며 경남 문화재자료 제 7호로 지정되었다. 계사년 전투에서 진주성이 함락되자 논개는 이 자리에서 왜장을 강가 바위까지 유인, 껴안고 물에 뛰어들었는데, 그 바위가 바로 의암이다.

* 진주성 의가사
진주성내 의기사는 임진왜란 당시(1593년)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 논개의 영정과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논개는 진주성이 함락되자 성민과 나라의 원한을 갚기 위하여 왜장을 촉석루 아래 의암으로 유인한 후 함께 남강에 몸을 던져 순국하였다. 의기사는 그 의로운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영조 16년(1740년)에 경상우병사 남덕하(1688~1744년)가 창건한 이래 두 차례에 걸쳐 증건하였으며, 지금의 건물은 1956년 의기창열회가 시민의 성금을 모아 중건한 것이다.

* 촉석루
남강(南江)가 바위 벼랑 위에 장엄하게 높이 솟은 촉석루는 영남(嶺南) 제일의 아름다운 누각임을 자랑한다. 고려 고종 28년(1241)에 창건하여 8차례의 중건과 보수를 거쳤던 이 누각은 진주성의 남장대(南將臺)로서 장원루 (壯元樓)라고도 하였다. 전쟁이 일어나면 진주성을 지키는 지휘본부였고, 평화로운 시절에는 향시(鄕試:初試)를 치르는 고시장(考試場)으로 사용 되었다.
 
소설 '아리랑' 배경지
소설 '아리랑' 배경지 (전라북도 김제시 )
 소설 아리랑
소설 아리랑은 조정래 선생의 근현대사 삼부작중 도입부에 해당하며 일제강점기 40여년의 세월과 김제를 시작으로 전 세계로 흩어진 이산의 과정 및 민족의 고난과 투쟁을 그리고 있다. 아리랑은 1990. 12. 11. 한국일보 연재를 시작으로 1995년 8월 해방 50주년을 맞이하며 제12권(전12권)을 출간하였고, 1996년 연구서인 '아리랑 연구' (조남현 외 11인)가 출간되고, 같은 해 프랑스 아르마따출판사와 '아리랑' 전 12권 완역 출판계약이 체결되어 최초로 프랑스어 완역출간이 이루어졌다.

2007. 1. 29. 초판 1쇄가 나온 지 13년 만에 100쇄(제1권 기준)를 돌파했으며 현재까지 제1~12권을 합쳐 806쇄를 찍었으며 누적판매부수 330만부를 기록하는 등, 일제강점기를 다루고 있는 소설 중 일반독자에게 가장 널리 읽히고 있는 대표적 역사소설이다. 조정래 선생이 인터뷰를 통해 언급했듯이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소설의 배경으로 징게맹갱(김제만경)이 선택된 이유는 ‘수탈당한 땅과 뿌리뽑힌 민초들’이 민족의 수난과 투쟁을 대변하는 소설의 중심축이기 때문이다.
 
장성호
소설 '징소리' 배경지 (전라남도 장성군 )

소설가 문순태씨는 장편소설 <징소리>에서 장성댐 수몰민의 쓰리고 아픈 가슴을 '허칠복'이라는 주인공을 통해 토해냈다. 허칠복은 고향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들고 나온 징 하나를 들고 도시를 배회하다, 고향으로 돌아와 물 속에 잠긴 고향을 보면서 옛 친구들을 찾는다. 소설 속에서 그는 정신이 나간 사람으로 표현되지만, 그것은 고향을 잃어버린 슬픔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이었을 테다.

* 수몰문화관 >> 

* 장성댐 >>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전북 정읍을 지나 맨 처음 만나는 남도 땅이 장성이다. 두 고장 사이에는 갈재라는 고개가 있다. 장성은 호남터널이있는 험준한 산맥, 즉 노령이 마치 긴 성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홍길동의 고장으로도 유명하다. 내장산국립공원 남쪽의 장성호는 영산강 유역 개발사업의 하나로 황룡강의 상류를 막아 건립된 거대한 인공 호수이다. 제방의 길이 603m, 높이 36m이고, 저수량이 8,970만 톤이며 각종 민물고기가 많을 뿐 아니라 남북으로 산에 둘러싸여 아름다운 경관을 이룬다.

 
소설 '탁류' 배경지
소설 '탁류' 배경지 (전라북도 군산시 )
전라북도 북서부에 위치한 군산은 기름진 평야와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수많은 문화유산을 간직해온 유서 깊은 고장이다. 근대 소설 문학의 거장인 소설가 백릉 채만식(1902∼1950)은 임피면 축산리 31번지에서 출생하였고 중앙 고보를 졸업한 후 일본의 와세다대학 영문과에 입학했으나 관동 대지진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여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하였다. 1925년에 단편 [세길로]가 [조선문단]에서 추천을 받았고, 그 후 지속적으로 단편과 장편소설 그리고 희곡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다. 1937년에는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장편소설 [탁류]를 조선 일보에 연재하였고 1945년 4월에는 고향으로 돌아왔으며 지속적으로 글을 쓰다가 건강을 잃고, 결국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일주일 전에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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